2012년 복고 열풍이 뜨겁다. 물론 몇 년 전부터 영화 ‘써니’, ‘댄싱퀸’과 가수 세시봉 등의 출현으로 70~80년대의 복고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하지만 2012년, 복고 열풍의 키워드는 다름 아닌 ‘90년대 복고’이다. 사람마다 추억은 상대적인 법이다. 40~50대를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70~80년대가 그리운 법이지만, 지금의 20~30대에게는 90년대의 또 다른 추억이 존재한다. 그들은 최루탄이나 학생운동에 대한 경험이나 양희은의 ‘아침이슬’을 부르는 세대가 아니라 HOT 캔디에 열광하고 흘러내릴 듯한 힙합바지를 입고, 어깨가 축 처진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IMF의 경제 위기 시대를 지나왔다. 그리고 이제 20~30대가 되어 누군가는 벌써부터 추억을 그리워 하냐고 핀잔을 줄지도 모르지만, 그들만의 뜨거웠던 90년대를 추억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들을 387세대(397세대란 1970년대 출생하고, 1990년대 학번의 30대를 지칭하는 말)라고 부른다. 그들은 이제 어엿한 사회의 주 소비계층으로 자리 잡았고, 그들의 향수를 자극해 지갑을 열게 하는 것이다. 더불어 어린 10대나 20대에게는 90년대 복고는 새로운 호기심의 대상이 되어 그 열풍은 더욱 강렬해졌다. 이처럼 뜨겁게 2012년을 강타한 90년대의 ‘복고’, 지금부터 그때 그 시간으로 태엽을 감아 그 시절의 추억 속으로 들어가 보자.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라는 카피를 내건 영화 ‘건축학개론’. 이 영화는 우리 모두의 기억 한 켠에 있는 아련한 첫사랑을 키워드로 4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다. 특히 ‘건축학개론’은 첫사랑에 대한 기억과 함께 90년대 학번의 감성을 아련하게 적셨다. 영화의 중간 중간 90년대 소품인 삐삐, CD플레이어, 전람회, 386 컴퓨터 등 통해 그 시절을 오롯이 떠오르게 했다. 또한,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이나 공일오비의 ‘신인류의 사랑’, 마로니에의 ‘칵테일 사랑’ 등의 가요가 흘러나오면 함께 흥얼거리며 우리의 마음을 찢어지게 아프게 했던 첫사랑을 떠올린다. 게다가 당시 최고 유행이던 게스(GUESS)의 짝퉁 ‘GEUSS’ 티셔츠나 재수생 친구 납뜩이가 입고 나온 통이 큰 힙합바지, 1기가인 펜티엄 컴퓨터에 감탄하는 장면에서 깊은 공감과 함께 ‘저땐 저랬지’라고 미소를 짓는 사람이 많았다. 이렇게 영화는 90년대 감성과 문화를 담아내며 그 시절을 지나온 사람들에게 큰 공감과 지지를 받았다. 물론 첫사랑이라는 키워드로 90년대 학번 이외에도 많은 관객의 마음에 그리운 추억 하나를 불러 일으켰기에 가능했던 결과였다.

tvN ‘응답하라 1997’는 ‘응칠데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며 화요일 밤마다 TV 앞으로 불러 모았다. 응답하라 1997은 ‘H.O.T’ 오빠에 미쳐있던 부산 여고생과 다섯 명의 친구들을 중심으로 90년대를 완벽 재현했다. 케이블 드라마로써는 이례적으로 신드롬을 일으킨 이 드라마는 1990년대 학창시절을 보내고, 어른이 된 지금의 30대에게 아련하고 즐거운 시간 여행을 할 수 있게 해준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1997년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들에게는 1997년은 잊을 수 없는 특별한 해였다. 사회적으로는 IMF로 외환위기를 맞아 경제위기에 봉착했으며, 아이돌 1세대인 HOT와 젝스키스가 대중문화의 판도를 뒤엎던 그 시대. 양파의 ‘애송이의 사랑’ 노래처럼 어설픈 첫사랑이 시작되고, 남자들은 성에 눈을 뜨기 시작했던 여드름이 울긋불긋했던 사춘기를 맞았다.

그밖에도 90년대 학창시절을 맞았던 사람 외에도 1997년은 특별했다. HOT에 푹 빠진 딸의 브로마이드를 뜯으며 ‘공부나 해!’라고 소리를 질렀던 엄마, 메이저리그 LA 다저스에서 활약하던 박찬호의 선발 경기가 있던 날이나 한일전 축구가 있던 날,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치킨을 뜯어 먹으며 선수들을 향해 목소리를 과하게 높이기도 했다.

더불어, 그 시절을 자극하는 추억의 삐삐와 다마고치, DDR, 이스트 팩 등 그 시절 유행했던 아이템의 디테일을 살려 1997년을 완벽 재현해냈다는 점에서 90년대 복고 문화를 점화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90년대 학번의 30대는 젊음이 가득한 클럽에 가기에도, 성인 나이트에 가기에도 애매한 시대가 되었다. 늙지도, 젊지도 않은 어중간한 90년대 학번이 마음 놓고 즐길 수 있는 복고형 음악클럽이 인기다. 대표적인 복고형 클럽으로는 ‘밤과 음악 사이’가 꼽힌다. ‘밤과 음악 사이’에 가면 MUSIC BOX가 있다. 1970~90년대를 주름잡던 LP판이 있어, 원하는 신청곡을 적어내면 노래를 틀어준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리아의 ‘눈물’이나 K2의 ‘슬프도록 아름다운’ 등의 노래가 흘러나오기도 하고, HOT의 ‘캔디’ 같은 댄스곡이 나오기도 하는데 이럴 때면 사람들이 다 함께 홀 중앙으로 나와 추억의 춤을 추기도 한다. 언제부턴가 아이돌 중심이 되어버린 가요계와 7080음악 위주로 형성되었던 복고문화 사이에서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에게 소소한 즐거움을 안겨준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90년대 학번뿐만 아니라 금요일만 되면 밤과 음악 사이에는 20대의 젊은 대학생들이 긴 줄을 서 가며 기다린다. 30대에게는 추억을, 20대에게는 90년대 문화가 새로운 호기심의 대상인 것이다. 음악클럽의 복고 열풍은 많은 연령대를 포옹하며, 추억과 감성을 자극하며 '신(新) 복고'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원색의 백팩, 가죽점퍼, 통 큰 힙합바지, 청청패션(상의와 하의 다 청 소재를 함께 입는 패션), 스니커즈 등 90년대 스타일이 거리에서 하나 둘씩 보이기 시작한다. 특히 영화 ‘건축학개론’과 ‘응답하라! 1997’이 90학번의 감성을 자극했다면, 복고 패션은 90학번의 30대가 아니라 10~20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체크무늬나 발목까지 오는 바지, 스카프를 이용한 머리띠나 머플러 등 옷 외의 다양한 아이템을 활용해 촌스러운 듯 개성 있는 모습을 연출하기에 유용하다. 게다가 90년대 유행하던 ‘투톤’ 헤어스타일(두 가지 색상을 조합한 스타일)을 한 사람도 적지 않다. 올 가을, 겨울에는 2~3사이즈 큰 오버사이즈와 플라워, 도트 패턴, 원색적인 컬러 등이 유행할 것으로 예상되는 등 복고 패션도 하나의 패션 스타일로 자리 잡고 있다.

요즘 화려한 그래픽의 3D 게임이 끊임없이 출시되고 있다. 그러나 3D 게임을 마다하고 추억의 2D 그래픽 게임의 부활에 열렬한 박수를 보내는 사람도 적지 않다. 어린 시절 친구가 세가에서 출시한 ‘메가CD’용 게임기를 갖고 자랑할 때면 옆에 앉아서 ‘나도 한번만’이라고 말했던, 정말 갖고 싶은 게임을 이젠 어른이 되어서 마음껏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외에도 슈퍼마리오와 팩맨, 테트리트와 함께 ‘오락실 키드’로 불리며 스트리트 파이터들도 속속히 다시 부활하고 있다. 게다가 수학여행 밤에는 둘러앉아 ‘부루마블’ 게임을 하며 ‘서울’땅을 사기 위해 주사위를 참 열심히도 던졌던 그 게임까지도 스마트폰으로 즐길 수 있게 됐다. 물론 그때의 느낌을 100% 느낄 수는 없지만, 그때의 감성과 즐거움을 추억할 수는 있어 매우 요긴하다.

요즘 ‘레트로(Retro)’라는 단어가 자주 언급된다. 레트로는 복고주의를 지향하는 하나의 유행을 뜻하는데, 특히 가전제품과 가구에 자주 사용된다.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하는 레트로 오디오 제품을 비롯해 한동안 잠잠했던 통돌이 세탁기를 찾는 사람도 늘어났다. 더불어 양문보다 기본형냉장고을 선택하는 등 알뜰 복고 가전을 선호한다. 또한, 파리바게뜨는 ‘자꾸 생각나는 찰호떡’을 출시했고, 뚜레쥬르는 1970년 인기 애니메이션 ‘로봇 태권V 케이크’를 출시했다. 그리고 운동회나 소풍 때 함께하는 탄산음료 오란씨는 복고의 정서를 활용한 CM송과 의상 등을 통해 소비자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이처럼 가전제품과 식품업계의 복고 열풍은 한동안 강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까지 90년대를 추억할 수 있는 영화, 드라마, 복고형 클럽, 패션 스타일, 게임, 전자제품 등에 대해 알아봤다. 복고 열풍은 과거의 따뜻하고 즐거웠던 추억을 통해 지친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고,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 한 길목에 서서 쉼표를 찍고 쉴 수 있게 해준다. 그것이 사람들에게 편안함과 친숙함을 주는 것 같다. 한동안 복고 열풍은 사그라지지 않고, 지속되거나 더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