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와 드라마에서 남녀 주인공이 사랑에 빠지는 장소로 자주 등장하는 곳은 다름 아닌 ‘도서관’이다. 최근 방영된 ‘사랑비’에서도 비 오는 날 도서관 앞에서 망가진 노란 우산을 쓰고 함께 뛰어갔다. 도서관은 로맨스가 꽃 피는 장이자, 70, 80년대를 대표하는 문화의 중심지였다. 다행스럽게도 도서관이 70, 80년대만 반짝하고 저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로 진화해오면서 요즘 혜성처럼 등장한 ‘스터디룸’과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꿈을 향해 나아가는 대학생들의 일상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도서관과 스터디룸에 관해 알아보자.

“오늘날 나를 있게 한 것은 동네의 공공 도서관이었다.”라고 빌게이츠는 말했다. 70, 80년대 대학생들은 빌게이츠처럼 저마다의 꿈을 위해 노력했고, 그 과정에서 거쳐야 했던 가장 보편적인 곳이 바로 ‘도서관’이었다.

특히 70년대는 컴퓨터가 널리 보급되지 않았다. 대학생활의 필수라 할 수 있는 리포트는 직접 손으로 써서 제출해야 했으며, 자료를 찾기 위해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다. 70년대도 소 팔아서 등록금을 마련해 아이들을 공부시키던 시절이었기에, 귀한 등록금만큼 개미처럼 성실히 학업에 열중하는 대학생이 많았다. 그러나 대학 졸업자의 수가 적고, 경제가 호황을 누리고 있어 대학 졸업장만 있으면 기업에 쉽게 입사할 수 있었다. 이에 대학생들은 취업에 대한 압박감이 적어 도서관에서 전공과목 외에도 비치된 이념 서적이나 고전들을 읽으며 세상을 바꾸기 위한 해답을 찾는데 열중했다. 70년대 금서이던 이태준의 단편 ‘밤길’을 몰래 읽고, 헨리 조지의 ‘빈곤에서 벗어나는 길’을 읽으며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가치관과 세상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등 도서관 안에서 좋은 책을 삶의 자양분으로 삼으며 성장했다.

80년대 들어서 ‘민주화의 꽃’을 피우기 위한 ‘학생 운동’이 거칠게 몰아치자 대학교는 휴교령을 내렸다. ‘학생 운동’에 열중하는 학생이 있었던 반면, 그로 인해 갈 곳을 잃은 대학생들은 도서관이 유일한 안식처였다. 도서관 앞은 통금이 해제되던 새벽 4시부터 긴 줄을 서서 도서관 개장을 기다렸고, 8시였던 개장시간은 7시에서 5시로 점차 당겨질 만큼 이용자 수는 비대해졌다. 그 시절 적은 도서와 자료,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부분이 많았지만, 꿈과 반짝이는 미래를 위해 지식을 하나라도 더 얻기 위해 도서관을 찾는 사람이 많아 늘 북적였다.

그렇다고 도서관이 학문과 지식의 장만은 아니었다. 전쟁 통에도 사랑이 꽃피는 것처럼 학생 운동과 휴교령 등 사회적인 고뇌가 있었지만, 불타는 젊은 청춘 남녀가 모인 도서관은 로맨스의 장이기도 했다. 마음에 담아둔 상대의 자리를 힐끔힐끔 거리고, 쪽지와 자판기 커피를 올려두는 것으로 마음을 표현했다.

최근 화제가 된 ‘도서관 고백 실패’를 보면 도서관은 여전히 학생들의 연애의 장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도서관 고백 실패’ 사건은 한 남성이 도서관에서 마음에 드는 여성을 발견하고 음료수를 주자, 여성이 다시 캔 커피에 쪽지를 붙여 아쉽게도 거절의 뜻을 전했던 것이다. 이처럼 30년이란 시간이 지나도 도서관의 로맨스는 변치 않는 고전으로 여전히 전해지고 있다.

7080시대를 휩쓸었던 문화 아이콘이 도서관이라면, 이제는 스터디룸이 대세다. 2010년 커피전문점 수가 2,000개를 돌파했을 만큼 한국은 커피공화국이 되었다. 커피공화국의 가장 큰 고객은 다름 아닌 대학생.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대학생들의 평균 카페 이용횟수는 2~4회로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이는 단순히 ‘커피’를 즐기기 위함보다는 사람들과의 모임장소와 무선 인터넷 사용과 스터디를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즉, 과거의 도서관 역할을 카페의 ‘스터디룸’이 대신해주고 있는 것이다.

최근 대학교 강의나 취업에 토론과 프레젠테이션 등이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과거 혼자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방식에서 여러 명이 함께 주제에 대한 의견을 공유하는 스터디 모임으로 바뀌었다.

그에 따라 과부하상태의 대학가에 위치한 카페는 차별화를 위해 프로젝트 빔과 칠판, 컴퓨터 등의 필요한 다양한 시설을 갖추게 되었고, 대학생들의 ‘스터디룸’의 사용빈도도 자연스럽게 높아졌다.

스터디룸은 시간당 일정한 금액을 내고 이용하며, 2인실부터 2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 공간을 갖추고 있다. 그 밖에도 각종 서적과 신문, 노트북 대여 등의 혜택이 있으며, 음료 외에도 가벼운 다과들을 판매하고 있다. 때로는 각 계 명사들을 초청해 대학생에게 유익한 강연회를 열기도 한다.

얼마 전 찾은 신촌의 ‘위지안 카페’에도 토익과 영어회화 등 스펙을 쌓는 학생부터 취업을 앞두고 면접을 준비하는 학생까지 다양한 용도로 이용하는 학생이 많았다. 한 학생은 “전공시험이 필기로만 이루어진 게 아니라 팀을 이뤄 리포트를 작성하고, 발표하는 것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팀 프레젠테이션을 하기에 앞서 미리 점검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고 설명했다.

한편, 대학들도 이런 변화에 발맞춰 스터디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있다. 이화여자대학교의 복합 문화단지 ECC에는 학생들이 함께 공부할 수 있는 세미나실이 있고, 지난해 개관한 중앙대학교의 도서관에도 세미나실을 갖췄다.

스터디룸은 대학생활의 문화로 정착되었다. 공부에서 소모임, 소모임에서 의견을 공유하는 회의까지 하나의 트렌드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해 도서관은 스터디룸으로 대체할 수 없는 수 만권 이상의 책을 보유하며, 그 색깔과 명맥을 유지해가고 있다. 스터디룸과 도서관은 조금 다른 역할을 수행하고 있고 앞으로 조금씩 형태는 변하겠지만, 대학생의 꿈과 미래를 위한 열정 가득한 공간임은 분명하다. 그 열정 속 열기가 꿈을 향해 달려가는 대학생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자 날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