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좋은 공휴일. 점심때 집을 나서 오후 2시 즈음, 시흥시의 최서남단에 위치한 섬 오이도에 발을 내딛었다. 지방에서 올라와 일에 전전긍긍 하다 보니 서울에 살면서도 콧바람 한 번 쐬지 못했다. 오이도역에 도착하는 순간 '이날처럼 여유로웠던 적이 있었을까?' 싶다. 머지않아 다가올 휴가철. 분명 그 때가 되면 또 일에 매달려 있을 필자의 모습을 상상하니 깊은 한숨부터 푹푹 새어 나온다. 남들보다 이른 여름휴가이긴 하지만 이날만큼은 잘 즐기리, 남들이 보내는 여름휴가보다 더 뜻 깊게 보내고 오리. 그렇게 다짐하고 역을 나섰다.

오이도는 조선 초기 일본인이 와서 섬의 지세를 보고는 엉뚱하게도 까마귀의 귀처럼 생겼다 하여 '오이도'로 불렀다고 한다. 일명 '옥귀섬(玉貴島)'이라고도 하며, 남북으로 길게 늘어진 모양으로 전체가 해발 72.9m를 넘지 않는 낮은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오이도역 2번 출구로 나가 30-2번 버스를 이용하고, 동보아파트에서 하차하여 10분 정도 걸었더니 대문짝만한 '옥구공원'팻말이 세워져 있다. 자연모습 그대로의 아름다움에 편리함까지 갖춘 도시공원 옥구공원.

푸르른 나무 사이, 형형색색의 꽃들이 남발하고, 일상의 여유로움을 만끽하는 사람들이 저마다 돗자리와 텐트를 펼치고 선선한 여름바람을 맞고 있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소리, 지저귀는 새소리, 산뜻한 공원내음. 가만히 서서 그 풍경을 감상하니 마음까지 평화로워졌다. 산책로를 따라 걸으니 옥구공원을 소개하는 간판이 보인다. 옥구공원은 시화신도시가 대도시로 급성장함에 따라 시민의 휴식공간이 절대 부족하였던 터, 1999년 1월부터 12월까지 도시민의 자연 휴식 공간 확충을 위해 옛 정취 어린 '고향동산'으로 개발했다. 한편, 옥구공원은 가족도 연인도 누구나 함께 할 수 있는 휴식지로서 숲속교실, 해양생태공원, 산책로 등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계속해서 시원한 바람이 이끄는 그곳으로 따라가 보았다.

꼭 옛 신선들이 나올 것만 같은 이 곳. '연꽃단지ㆍ습지원'이다. 신록이 아름다운 계절에 딱 어울리는 쉼터가 아닐까 싶다. 한쪽은 연꽃 마을, 또 한쪽은 습지원으로 조성되어 있는 이 곳에서 초록빛의 초원과 습지의 억새모습을 통해 수련의 고운 자태를 한 눈에 감상할 수 있었다.

오이도하면 '바다' 그리고 먹거리인 '조개구이'가 생각난다. 햇살에 반짝 반짝 빛나는 바다가 꼭 흑해 같았고, 부산에만 있을 것 같은 바다의 상징 '갈매기'는 오이도에 오는 사람들을 일일이 맞이하듯 자유롭게 활보하며 끼룩끼룩- 거리고 있었다. 날아다니는 갈매기, 잔잔한 파도소리, 북적 이는 사람들로 하여금 제법 여름 피서지 느낌이 물씬 가득했다.

배우 고현정이 출연한 드라마 <여우야 뭐하니>의 촬영지이기도 한 빨간등대. 해안로에 위치한 빨간등대는 오이도에서 꼭 들러야 할 필수 코스이다. 어촌관광 활성화를 위한 관광벨트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2005년도에 만들어진 빨간등대는 등대 모양을 본떠 바다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지만, 등대의 역할보다는 전망대의 역할이 더 크다. 보자. 얼마나 화려한 전경을 볼 수 있을까? 빨간등대 꼭대기까지 올랐다. 뜨거운 햇살이 등대도, 바다도, 사람들도 환하게 비춰주었다. 특히 해질녘 노을 낙조풍경이 예술이라는데 오늘 그 광경을 볼 수 있을까?

빨간등대 옆으로 이어지는 길목은 다름 아닌 '오이도 선착장'이다. 빼곡히 늘어진 천막 아래에는 어민들이 갓 잡아온 어패류나 고기, 각종 해산물 등을 팔고 있었다. 하나같이 신선하지 않은 것이 없었고, 이곳을 찾아온 사람들은 너도나도 줄지어 싼 가격에 먹을 것을 구입해갔다. 어민들의 삶과 애환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이 장소를 지나 선착장 가까이 다가가니 여기저기 자리를 펴고 한창 회 한 점에, 소주 한 잔씩. 바다 내음에 취해, 파도소리에 취해 즐기는 음식의 맛이 가히 일품인 모양이다. 한편, 파도가 들썩이는 선착장 물가. 물이 넘나는 것에 대한 신경은 저만치 물 건너간 듯 사람들은 일렁이는 파도 가까이 앉아 구경을 하는가 하면, 바다를 배경 삼아 사진을 찍는 커플도 있었다. 작은 어린아이들은 밀려오는 파도에 즐거운 듯 소리를 내지르며 발을 담그기도 했다. 이들로 하여금 더위를 싹 가시게 하는 기분이 들었다.

출출함에 유명하다는 오이도 '조개구이'를 맛보러 갔다. 거리 곳곳 자신의 가게에 오라며 호객행위를 했다. 어느 조개구이 집이 맛있는지, 어디가 가격이 더 싼지, 어디가 서비스를 더 많이 주는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가격대비 최고의 맛집을 찾아가려면 오이도 방조제 끝에서 끝까지 일일이 들어가 보는 수밖에. 지치기 전에 무한리필 조개구이 집으로 향했다. 갓 건져낸 조개가 뜨거운 불판 위로 올라갔다. 조개의 입은 벌릴까 말까 지글지글 끓으며 애를 태우기 시작했다. '뽁-'하는 청아한 소리를 내며 드디어 입을 벌렸다. 허겁지겁 초장에 담궈 보리밥과 칼국수와 함께 시식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날씨가 점점 흐려졌다. 안개 자욱한 이곳에서 정녕 낙조는 볼 수 없는 것인가. 결국 낙심하고 말았다. 아쉬운 마음에 방파제 길을 따라 걸었다. 걷다 보니 '퇴역 경비함 해우리 12호(262함)'가 바다가 아닌 방파제 길 위에 떠있다. 47.75m의 길이, 7.1m너비의 규모를 자랑하는 해우리 12호는 1980년 8월 한진중공업에서 건조되었고, 이후 서해 바다에서 9만7,225시간, 62만4,321km를 운항하며 각종 임무를 수행한 뒤 퇴역했다고 한다. 내부로 들어가지 못하게끔 막아놓았지만 곧 조타실과 갑판 등을 보수해 포토존과 전망, 소규모 공연장 등으로 오이도의 새로운 볼거리로 만들 예정이라 한다. 문화공간으로 탈바꿈 할 해우리 12호의 새로운 변화가 무척이나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