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사로운 햇볕이 내리쬐는 선선한 어느 날, 누구나 한 번쯤 꿈꿨을 ‘기차여행’을 필자도 떠나보기로 했다. 사실 그간 ‘기차여행 뭐 별것 있나?’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고, 게으른 탓에 여행에 대한 특별한 환상을 가져 본 적이 없었다. 더더군다나 나 홀로 떠나는 여행은 그저 지루하고 외롭다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날만큼은 달랐다. 서울역부터 부산역까지, 부산역부터 부산 인기 여행지까지, 단 한시도 지루하거나 외로울 틈이 없었다. 그 내막을 고스란히 독자들에게 전해주고자 한다.

부산역을 기준으로 감천문화마을이 있는 토성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6번 출구로 나와 부산대학병원 암 센터 앞에서 마을버스 2, 2-1, 1-1번을 기다렸다. 홀로 카메라를 들고 쭈뼛쭈뼛 서 있는 동안, 감천문화마을을 구경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버스정류장에서 대기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하는 예쁜 대학생 커플, 필자처럼 혼자 여행을 즐기러 온 나 홀로 족 여행자를 보고 있으니 괜히 홀로 떠나는 여행이었음에도 그들과 같은 목적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고 생각하니 든든하고 외롭지 않았다. 마을버스를 타고 감천문화마을로 향하는 중, ‘아직도 멀었나?’를 몇 번이고 되뇌는 동안 어느 한 달동네에 도착했다. 가파른 고개를 넘어서 도착한 이곳에서 나는 ‘낙’이 무엇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꼭 경상남도 남해 다랭이 마을처럼 집들이 층층으로 밀집해있었고, 집의 지붕과 벽면에는 파스텔 톤의 색감으로 입혀진 아기자기한 그림이 가득했다. 보이는 광경 자체가 꽤 흥미로웠다.

입구에서 감천문화마을 지도를 살폈다. 지도는 눈으로 쉽게 이해가 되었지만, 정작 내 몸은 어디서 어떻게 가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마을 주민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신다. “화살표를 따라 가보세요.” 종종 헤매는 관광객이 많았던지 굳이 필자가 묻지 않았음에도 친절하게 가야 할 길을 알려주셨다. 덕분에 골목길 프로젝트 탐방이 시작되었다. 감천2동의 가장 큰 특징은 골목길이 대부분 막힘 없이 연결되어있어, 마을을 처음 찾는 방문자가 아무 길에 들어서도 나올 수 있는 구조로 되어있다. 사실 마을 중간에 있는 여러 집 프로젝트의 작품을 찾아 다니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동의 동선을 화살표로 표시해두어 금방 아름다운 골목길을 둘러볼 수 있다. 한편, 문화마을 골목길 곳곳 위치한 작품들을 소개할까 한다.

어느 날, 길에서 우연히 버려진 와인 병의 코르크 마개를 발견한 이곳 주민 김정주 씨.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으나 이제는 소용없다고 버려지는 코르크 마개를 보고 그는 주변에 버려진 물건들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사실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물건들이 제 각각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지만, 어떤 이유에서 그 기능을 상실하거나 파손되면 그대로 버려지기 마련이다. 이를 생각하여 그는 버려진 물건과 대화하는 버릇이 생겼고, 감사의 마음과 안타까운 마음을 작품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버려진 물품으로 재활용하면서 자신의 부모님과 세상의 모든 것들이 영원하기를 바라면서.

마을 중간지점에는 화살표 이미지를 시각화한 ‘희망의 나무’라는 ‘포토존’이 있다. 화살표가 상징하는 희망의 약속과 미래 비전을 상상해보라는 의미로 만들어진 곳이라고 한다. 힘들게 올라온 골목길 중간지점인 희망의 나무 아래에 앉아 마을의 정취와 사통팔달의 골목길을 느끼며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에 앉아 잠시 쉬어갔다.

감천2동은 한국전쟁으로 인해 조성된 마을이다. ‘평화의 집’이라 불리는 이곳은 민족의 평화와 인류공영의 염원을 담은 방문객들의 메시지와 서명을 내부 공간의 벽면에 계속해서 기록 부착하고 축적해 나가고 있었다. ‘평화는 눈으로 볼 수 없고, 귀로 들을 수도 없다. 그러나 평화는 세상의 모든 것을 담아 낼 수 있는 그릇이다.’ 모든 것을 담아낼 수 있는 그릇으로 평화를 시각화한 작품이다. 자연스레 나도 방문흔적을 남기고 왔다.

그렇게 골목길 이곳 저곳을 누비며 사람 사는 냄새를 맡고, 눈이 즐거운 뜻 깊은 시간을 보냈다. 마을 한 바퀴를 돌다 보니 관광객을 위한 포토존이 마련되어 있었다. 홀로 다니다 보니 경치만 찍을 줄 알았지, 정작 내 모습이 찍힌 사진은 단 한 장도 없었다. 마침 나 홀로 족으로 추정되는 대학생 한 명이 눈에 띄길래 사진 한 장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서로서로 사진 한 장씩 찍어주며, 여행 중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 이렇게 가치 있는 일인가 새삼 느꼈다.

켜켜이 먼지 쌓인 오래된 책과 도심 속 책 가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새 책이 모여 풍기는 책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그리 길지 않은 골목길에서 한 가득 쌓여있거나 꽂혀있는 책을 보고 있으니 그저 소박한 헌책방 골목 그대로의 모습이 눈에 보였다. 한 서점을 지날 때였다. 서점 입구, 낡은 흑백 사진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동안의 책방 역사를 한눈에 읽을 수 있도록 과거의 책방 모습이 사진 안에 담겨 있었다. ‘얼마나 오래되었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서점을 오갔을까?’ 문득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기도 했다. 한편, 여기저기 책을 사러 온 사람이 꽤 많았다. 어린 학생들부터 성인까지. 유독 눈에 띄는 한 커플은 서로에게 필요한 책을 사주기로 했나 보다. 여기저기 책을 훑어보며 데이트를 즐기고 있는 모습이 너무 순수해 보여 나도 모르게 카메라 셔터를 눌러버렸다. 보수동 헌책방에서 즐기는 데이트란, 왜인지 느껴보지 못했던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하는 것만 같다고 할까?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과 이 길을 거닐겠다고 다짐하며 다음 여행지로 향했다.

이날 필자는 곤포유람선을 타고 바다에서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감상했다. 높고 푸른 하늘, 시원하게 굽이치는 거센 파도, 파도에 몸을 맡긴 유람선. 어떤 절경이 눈앞에 펼쳐질까 설렘만 가득했다. 승차권을 구입한 뒤, 태종대유원지 내 곤포유람선 선착장에서 유람선에 탑승했다. 일렁이는 파도에 배가 요동쳤고, 배에 몸을 싣는 순간, ‘아차’ 싶었다. 이미 배는 선착장에서 저 멀리 떨어졌고, 멀미 기운에 요즘 말로 ‘멘붕(멘탈 붕괴)’ 사태를 겪었다. 그러던 중 유람선에서는 관광안내방송을 시작했다. (사실 너무 시끄럽기도 했고, 멀미 때문에 눈으로 보았던 절경의 이름들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 또렷하게 기억에 남는 영도등대부터 설명해야겠다.

영도등대는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등대로 선정되어 공식명칭은 ‘영도항로표지관리소’이다. 1906년에 설치된 100년이 넘는 긴 역사를 자랑하는 영도등대는 전망대의 역할과 동시에 SEE*SEA 갤러리를 갖춘 종합해양문화공간이다. 파도에 심하게 일렁이는 배에서 눈을 질끈 감고 자리에서 일어나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러댔다.

또 영도 등대 밑에 위치하는 신선바위는 신선들이 노닐던 장소였다는 전설이 있다. 신선바위 위에 외로이 서 있는 망부석은 바다에 나간 남편을 애타게 기다리던 여인이 돌로 변하였다 하여 불리는 이름으로 애틋함을 지니고 있기도 했다. 한편, 제일 기이했던 현상이 눈에 아른거린다. 분명 유람선을 탈 때까지만 해도, 유람선 지붕 위만 보아도 날씨가 쨍쨍했다. 그런데 영도 등대가 위치한 하늘에만 먹구름이 잔뜩 끼어있었다. 기이한 날씨 현상의 의문을 풀지 못한 채 약 40분의 시간은 훌쩍 지나가 버렸고, 다시금 육지에 발을 내디뎠다.

생각보다 혼자 다니는 여행은 정신 없었다. 혼자서 여행출발지부터 여행도착지까지 가는 노선과 일정 및 시간을 짜야 했고, 내가 사는 곳이 아닌 외딴 지역에서 산전수전을 겪지 않으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혼자서 떠나는 여행은 모두들 무언가를 생각하기 위해 떠난다고 했던가? 빠듯하지 않은 범위 내에서 일정과 코스를 짜면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필자는 특별히 생각할 시간을 갖기보다 삶에서 안주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활동적으로 변화시키고 싶었다. 나 홀로 부산여행 덕에 ‘모험정신’과 ‘도전’이라는 값진 경험치를 얻고 돌아와 다음을 기약해본다.